datalink-박종영
최근 크리스틴 로젠의 『경험의 멸종』이라는 책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충격적인 통계가 하나 있다. 전 세계 16~22세 청소년의 53%가 자신이 선호하는 개인용 기술보다 후각을 잃는 편이 낫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10대 사용자의 64%가 1년간 소셜미디어 사용을 중단하는 것보다 투표권을 포기하겠다고 답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젊은 세대의 가치관 변화로만 볼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대신 유튜브 요약본을 보고, 얼굴을 보며 대화하는 대신 메신저 앱으로 간명한 메시지만을 주고받는 세상에 살고 있다. 직접 경험보다 간접 경험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대, 이것이 바로 '경험의 멸종' 시대다.
그렇다면 생성형 AI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지금,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 일하는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AI의 편리함에 취해 진정한 지식과 경험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성형 AI 시대에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경험하지 못한 정보를 자신의 지식으로 착각하는' 현상이다. AI가 제공하는 정보를 마치 자신이 직접 학습하고 체득한 지식처럼 착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조업 AI 시스템 개발에서 ChatGPT에게 "PLC 제어 시스템 최적화 방법"을 물어보고 상세한 답변을 받았다고 하자. 그 순간 우리는 마치 PLC 전문가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 가면 이론과 현실 사이의 거대한 간극을 마주하게 된다.
이는 던닝-크루거 효과의 디지털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AI로 쉽게 얻은 정보로 인한 과신이 메타인지 능력을 저하시키고,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경계를 흐려놓는다. 특히 제조업처럼 물리적 현실과 밀접한 분야에서는 이런 착각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AI 사용으로 해결이 되네!"라고 착각하지만, 진정한 지식은 해결이 아니라 지속적인 업그레이드와 지속 발전을 위한 것이다.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AI 시대를 살아가는 핵심이다.
일회성 해결은 점적 사고에 머물러 있다. AI를 사용해서 당면한 문제만 처리하고 끝나는 것이다. 근본 원인이나 시스템적 개선은 놓치게 되고, 같은 유형의 문제가 반복 발생해도 매번 AI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반면 진정한 지식은 메타 학습, 즉 문제 해결 과정 자체를 개선하는 능력을 포함한다. 한 영역의 지식을 다른 영역에 적용하는 전이 학습 능력, 그리고 기존 지식을 조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창발적 사고가 진정한 지식의 특성이다.
제조업에서 예를 들어보자. AI가 최적 파라미터를 찾아줬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왜 이 파라미터가 최적인지 이해하고, 다른 조건에서도 적용 가능한 원리를 도출해야 한다. 불량률을 개선했다면, 그 방법론을 체계화해서 다른 공정에도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지속적 업그레이드를 위한 접근이다.
실제로 많은 개발 조직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적 딜레마가 있다. AI를 활용해 코드를 개발했다고 가정해보자. 그 개발한 내용으로 지속적인 서비스와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을까?
여기서 블랙박스 문제가 발생한다. AI가 생성한 코드는 작동하지만 '왜' 작동하는지 모르는 상황이다. 서비스 변경 요구가 들어왔을 때 어디를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 막막해진다. AI가 생성한 코드는 즉시 작동할 수 있지만 장기 유지보수성 측면에서는 취약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도메인 지식의 부재다. 코딩 스킬과 도메인 지식이 결합되어야 지속 가능한 서비스가 만들어진다. AI 코딩만으로는 단발성 솔루션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제조업 AI 시스템에서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AI가 PLC 제어 코드를 생성했고 초기 테스트는 성공했다. 하지만 고객사 현장 환경이 달라지면서 미세한 센서 오차나 온도 변화로 오작동이 발생했다. 코드 로직을 이해하지 못해 대응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반면 성공적인 접근은 도메인 전문가가 AI와 협업하는 것이다. 제조 공정의 물리적 특성을 이해하고, AI 코드를 도메인 관점에서 검증하며, 현장 변수를 고려한 로직을 보완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지속적 개선이 가능한 구조가 만들어진다.
결국 해답은 AI 코드를 다루는 엔지니어와 제조 현장에서 오랜 경험을 가진 숙련공의 경험 지식이 상호 결합되는 것이다. 지속 성장을 위한 도메인 지식을 상호 협의하여 성장할 때 진정한 혁신이 가능해진다.
AI 엔지니어는 빠른 프로토타이핑과 코드 구현 능력, 데이터 분석과 알고리즘 최적화, 시스템 통합과 확장성 설계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 반면 숙련공은 현장의 미묘한 변수와 예외 상황을 인식하고, 장비 특성과 물리적 한계에 대한 직관을 가지고 있으며, 실제 운영 중 발생하는 문제 패턴에 대한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기존에는 이 둘 사이에 큰 격차가 있었다. AI 엔지니어는 "코드는 완벽한데 왜 현장에서 안 될까?"라고 의아해했고, 숙련공은 "이론대로 안 되는 게 현장인데, 설명하기 어려워..."라며 답답해했다.
하지만 융합 접근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숙련공의 암묵지를 언어화하고 체계화해서 AI 엔지니어가 코드로 구현하고, AI 시뮬레이션을 현장에서 검증받아 숙련공의 피드백을 통해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것이다.
실제 협업 시나리오를 보면 이렇다. 숙련공이 "이 장비는 습도 70% 넘으면 미세하게 떨려"라고 말하면, 엔지니어는 "그럼 습도 센서 데이터와 진동 센서를 연동해서..."라고 응답한다. 하지만 숙련공은 "아니, 그게 아니라 떨림이 시작되기 전에 소리가 달라져"라고 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면 엔지니어는 "아, 그럼 음향 분석도 추가해야겠네요"라며 더 정교한 솔루션을 설계할 수 있다.
이런 협업을 통해 양쪽 모두 성장할 수 있다. 숙련공은 자신의 경험이 시스템화되어 가치가 증대되고, AI 도구를 활용해 더 정교한 분석이 가능해지며, 다음 세대에게 체계적으로 지식을 전수할 수 있게 된다.
AI 엔지니어는 현장 컨텍스트를 이해한 실용적 코딩 능력을 기르고, 이론과 실무의 간극을 메우는 통찰력을 얻으며, 도메인 특화 AI 솔루션 설계 역량을 키울 수 있다.
조직 차원에서는 개인 의존도가 감소하고 시스템화된 지식이 축적된다. 신입 교육 시간이 단축되어 더 빠른 온보딩이 가능해지고, 고객 맞춤형 솔루션 개발 속도도 향상된다.
이런 융합이 성공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먼저 상호 존중의 문화가 있어야 한다. "AI가 숙련공을 대체한다"는 관점이 아니라 "AI와 숙련공이 함께 진화한다"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
지식 공유 체계도 중요하다. 정기적인 워크숍을 통해 숙련공의 경험을 엔지니어에게 전달하고, 엔지니어에게는 현장 체험 기회를 제공하며, 공동 프로젝트를 통해 함께 문제를 해결하면서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점진적 통합도 필요하다. 작은 성공을 통해 신뢰를 형성하고, 더 큰 협업으로 나아가면서 상호 의존성을 증가시켜 나가야 한다.
AI 시대의 진정한 승자는 기술을 가진 자도, 경험을 가진 자도 아닌, 둘을 융합할 수 있는 조직이 될 것이다. 이는 단순히 기술 도입이 아니라 조직 문화와 협업 방식의 근본적 진화를 의미한다.
미래에는 도메인 AI 스페셜리스트라는 새로운 역할이 등장할 것이다. 현장 지식과 AI 기술을 모두 이해하는 브릿지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또한 스마트 매뉴팩처링 코디네이터처럼 인간과 AI 시스템의 협업을 조율하는 역할도 중요해질 것이다.
숙련공 A의 경험이 AI 시스템을 통해 다른 현장의 숙련공 B에게 전달되고, B의 피드백이 AI를 개선시켜 전체 조직의 역량이 향상되는 지식 생태계가 구축될 것이다. 이를 통해 기술 변화에 적응하면서도 핵심 노하우를 보존하고, 새로운 기술을 현장 경험과 결합한 독창적 솔루션을 창출하며, 경쟁사가 쉽게 모방할 수 없는 고유한 역량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경험의 멸종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AI를 거부하는 것도,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것도 아니다. AI를 도구로 활용하되,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경험과 지혜를 더욱 소중히 여기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둘의 결합을 통해 지속 가능한 혁신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AI 시대 제조업의 미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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