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한 제조기업 임원분과 미팅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AI 도입했어요. 작년에 PoC까지 성공했는데... 결국 못 쓰고 있어요." 이런 이야기를 너무 자주 듣습니다. 화려한 데모, 95% 정확도, 경영진의 박수갈채까지 받았는데 왜 실제 현장에선 작동하지 않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PoC(Proof of Concept)만 하고 PoV(Proof of Value)는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PoC는 "기술적으로 가능한가?"를 증명하는 단계입니다.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들이 과거 데이터로 모델을 만들고, 테스트셋에서 좋은 성능을 보이면 성공입니다. 파워포인트에 그럴싸한 그래프를 그려 넣고, 경영진 앞에서 데모를 보여주면 "오, 우리도 AI 한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정작 실제 도입 단계로 넘어가면 문제가 터집니다. 실험실 환경과 실제 공장 환경은 완전히 다릅니다. 조명, 먼지, 진동, 온도 변화... 공개 데이터셋으로 95% 정확도를 자랑하던 비전 AI가 현장에선 58%로 추락하는 경우도 봤습니다.
더 큰 문제는 측정 불가능한 가치입니다. "AI 도입으로 생산성 10% 향상 예상"이라는 보고서는 만들어지는데, 정작 실제로 몇 퍼센트가 향상됐는지, 얼마의 비용이 절감됐는지 측정할 방법이 없습니다. 1년 뒤 재계약 시점이 되면 "효과가 있긴 한 것 같은데... 확실하지 않아서"라며 흐지부지됩니다.
PoV는 "비즈니스적으로 가치가 있는가?"를 증명하는 단계입니다. 처음부터 측정 가능한 비즈니스 임팩트를 설계하고, 실제 현장에서 그 가치를 만들어내며, 숫자로 증명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용접 결함 예측 AI를 만든다고 가정해봅시다.
PoC 방식은 이렇습니다. 과거 5년간의 용접 데이터를 수집하고, 결함 패턴을 학습시킵니다. 테스트 결과 92% 정확도가 나옵니다. 대시보드도 멋지게 만들어서 데모합니다. "이제 AI가 결함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박수받고 끝입니다.
PoV 방식은 완전히 다릅니다. 실제 생산 라인 1개 설비에 시스템을 연결합니다. 결함이 예측되면 작업자 스마트폰으로 알림이 갑니다. 4주 동안 운영하면서 불량률을 측정합니다. 기존 2.1%에서 1.7%로 감소했습니다. 절감된 재료비를 계산하니 주당 340만원입니다. 이게 진짜 가치입니다.
스타트업 세계에는 MVP(Minimum Viable Product), 즉 최소 기능 제품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PoV에서는 MVV(Minimum Viable Value), 최소 가치 제품이 필요합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됩니다. 정확도가 75%밖에 안 나와도 괜찮습니다. 대신 실제 현장에서 실제 가치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15%의 불량을 줄였다면, 그게 진짜 성공입니다.
실제 프로젝트 사례를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CNC 가공 공정 최적화 프로젝트였습니다.
기존 PoC 접근법이었다면 이렇게 했을 겁니다. 과거 5년 가공 데이터를 수집하고, 가공 조건과 품질의 상관관계를 분석합니다. 최적 조건 추천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시뮬레이션으로 10% 사이클타임 단축을 예상합니다. 그리고 경영진에게 보고합니다. "AI 도입 시 생산성 10% 향상 가능합니다." 결과는? 예산 승인 안 됩니다. 너무 추상적이고 불확실하니까요.
PoV 접근법으로 바꿔봤습니다. 첫 2주는 현장 관찰에 집중했습니다. 작업자들이 수동으로 조건을 조정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쓰고 있었습니다. 최근 6개월 가공 로그를 확인하니 데이터가 존재했고, 품질 데이터와도 연계 가능했습니다.
가치를 정량화했습니다. 현재 재가공률이 4.2%인데, 조건 최적화로 2.5%까지 낮출 수 있다면 월 1,200만원의 재료비 절감이 가능했습니다.
그다음 4주 동안은 최소 가치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가장 불량이 많은 제품 1종만 선정했습니다. 해당 제품의 가공 조건 최적화 모델을 개발하고, 작업자에게 태블릿으로 추천 조건을 제공했습니다. 중요한 점은 강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작업자가 수용 여부를 선택할 수 있게 했습니다.
4주 후 결과가 나왔습니다. AI 추천 조건 수용률은 67%였습니다. 수용한 경우 불량률은 1.8%, 기존 방식은 4.1%였습니다. 실제 절감액은 주당 280만원, 월로 환산하면 1,120만원이었습니다.
이 숫자가 만들어낸 변화는 놀라웠습니다. 성공 사례가 공유되면서 작업자들의 신뢰가 생겼고, 추천 수용률이 85%로 올라갔습니다. 유사 제품 3종을 추가로 적용했더니 월 절감액이 3,400만원에 달했습니다. 명확한 ROI 근거가 생기니 전사 확산 예산이 바로 승인됐습니다.
PoV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닙니다. 지속적인 가치 증명 체계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매주 금요일마다 가치 리뷰를 했습니다. 이번 주 절감액과 개선률을 측정하고, 예상치 대비 실제 성과를 비교했습니다. 편차가 발생하면 원인을 분석하고 조치를 취했습니다.
월간 가치 보고는 대상에 따라 다르게 작성했습니다. 경영진에게는 누적 ROI와 확산 계획을, 현장에는 작업 개선 사례와 피드백을, 기술팀에게는 모델 성능과 개선 포인트를 공유했습니다.
분기별로는 검증된 솔루션을 유사 라인으로 확장하고, 새로운 가치 영역을 탐색했습니다. 예를 들어 불량 예측에서 시작해 공정 최적화로 확장하는 식이었습니다.
PoV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비즈니스 오너 확보입니다. IT팀이나 데이터팀이 주도하면 안 됩니다. 생산부서장이 프로젝트 스폰서가 되어야 합니다.
그들의 KPI가 프로젝트 성과와 직결되어야 하고, 예산도 그들의 부서에서 집행해야 하며, 성과도 그들이 향유해야 합니다. 그래야 "AI 프로젝트"가 아니라 "생산성 향상 프로젝트"가 됩니다.
한번은 본사 주도로 AI 프로젝트를 진행한 기업이 있었습니다.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들이 멋진 모델을 개발했지만, 현장 작업자 교육 없이 배포했습니다. 결과는? 작업자들이 사용을 거부했습니다. 시스템만 남고 실제로는 아무도 쓰지 않았습니다.
첫 4-6주 내에 작은 성공이라도 만들어야 합니다. 대규모 완벽한 솔루션보다 작지만 확실한 개선이 훨씬 낫습니다.
한 프로젝트에서는 설비 알람 소음을 AI로 30% 줄였습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작업 환경 만족도가 크게 올라가면서 작업자들의 자발적 협조가 증가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변화, 현장 작업자가 체감하는 편의성이 중요합니다. 대시보드의 숫자가 아니라요.
PoV의 핵심은 빠른 학습입니다. 2주마다 회고를 하고, 작동하지 않는 것은 과감히 폐기합니다. 예상 못한 가치를 발견하면 방향을 전환합니다.
"실패한 PoV"도 학습 자산으로 문서화해야 합니다. 어느 기업이 비전 AI로 표면 결함 검사 자동화를 시도했습니다. PoC에서 공개 데이터셋으로 95% 정확도를 달성했지만, 실제 현장 적용 시 58%로 급락했습니다. 현장 조명, 먼지, 제품 변형이 공개 데이터와 완전히 달랐기 때문입니다.
이 실패에서 얻은 교훈은 명확했습니다. PoV는 처음부터 실제 환경 데이터로 시작해야 합니다. 낮은 정확도라도 실제 조건에서 측정된 개선이 진짜 가치입니다.
또 다른 실패 사례도 있습니다. 설비 예지보전 AI를 도입했는데, 모델은 잘 작동해서 고장 3일 전에 알람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고장 감소율을 측정하지 못했습니다. 기록 체계가 없었거든요. 1년 후 갱신이 안 됐습니다. 효과를 입증하지 못했으니까요.
이 경험은 중요한 깨달음을 줬습니다. PoV 시작 전에 측정 체계부터 구축해야 합니다. "Before" 데이터 없이는 "After" 가치를 증명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PoV를 진행할 때는 이런 로드맵을 따릅니다.
Phase 0: 가치 발견 (2주)에서는 현장 인터뷰로 진짜 페인포인트를 파악합니다. 데이터가 존재하는지 확인하고, Quick Win 영역을 식별합니다. 예상 임팩트를 시뮬레이션해봅니다.
Phase 1: 최소 가치 검증 (4-6주)에서는 1개 라인, 1개 설비만 대상으로 합니다. 완전 자동화가 아니라 수동 개입을 허용합니다. 주간 단위로 가치를 측정하고, 실패하면 빠르게 방향을 전환합니다.
Phase 2: 가치 확대 (8-12주)에서는 검증된 접근법을 3-5개 설비로 확장합니다. 자동화 수준을 향상시키고, 현장 작업자를 트레이닝하며, 표준 운영 절차를 수립합니다.
Phase 3: 가치 최적화 (지속)에서는 전사로 확산하고, 타 공정이나 제품군에 적용합니다. 지속적으로 모델을 개선하며, 새로운 가치 영역을 탐색합니다.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질문들이 있습니다.
가치 정의 측면에서: 측정 가능한 KPI가 정의되었나요? 현재 Baseline 수치가 측정되었나요? 목표 수치와 달성 기한이 명확한가요? 재무적 임팩트가 계산되었나요?
측정 체계 측면에서: 효과 측정 데이터가 자동으로 수집되나요? 주간 월간 리포팅 체계가 있나요? Before-After 비교가 공정한가요? 외부 요인을 통제할 방법이 있나요?
조직 준비도 측면에서: 비즈니스 오너가 명확한가요? 현장 작업자가 참여하나요? 실패 시 대응 계획이 있나요? 성공 시 확산 계획이 수립되었나요?
기술 현실성 측면에서: 필요한 데이터가 존재하나요? 4-6주 내에 첫 가치 창출이 가능한가요? 기술적 위험이 관리 가능한가요? 유지보수 계획이 있나요?
저는 최근 전략을 크게 바꿨습니다. 100개 기업을 넓게 지원하는 것보다, 1개의 완벽한 성공 사례를 만드는 데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이게 바로 PoV 접근법입니다.
제조 현장에서 AI는 "기술적으로 가능함"을 증명하는 게 아니라 "비즈니스적으로 가치있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PoC는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PoV는 실제로 돈과 시간을 절약합니다.
다음에 AI 프로젝트를 시작하실 때 이렇게 질문해보세요. "이 프로젝트로 정확히 얼마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나?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4주 후에 작은 성공이라도 만들 수 있나?"
이 질문에 명확하게 답할 수 있다면, 당신의 AI 프로젝트는 데모로 끝나지 않고 실제 현장에서 살아 숨 쉬는 솔루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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