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 그 복잡한 내면의 목소리

박종영

양심, 그 복잡한 내면의 목소리

1. 양심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로 양심(良心)은 '선악을 분별하고 옳은 것을 좋아하는 마음' 또는 '도덕적 의식'을 뜻합니다.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좋은 마음'이지만, 실제로는 우리 내면에서 끊임없이 작동하는 도덕적 판단 기제입니다.

양심은 단순히 선악을 구분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행동과 생각에 대해 끊임없이 평가하고 판단하는 내적 법정과도 같습니다. 이는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능력으로, 우리를 다른 존재들과 구별짓는 중요한 특징이기도 합니다.

2. 내 안의 두 가지 양심

우리 마음속에는 두 가지 상반된 목소리가 공존합니다. 하나는 옳은 일을 하라고 속삭이는 양심이고, 다른 하나는 그릇된 길로 이끄는 또 다른 양심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지하철에서 노약자석에 앉아 있는데 할머니가 타셨다고 가정해봅시다. 이때 우리 마음속에서는 두 가지 목소리가 들립니다.

한쪽에서는 "일어나서 자리를 양보해야 해"라고 말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나도 하루 종일 일해서 피곤한데, 다른 사람도 많잖아"라고 속삭입니다. 우리는 할머니를 못 본 척하며 스마트폰을 보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불편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내 주위의 불법적인 일을 알았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에서 세금 포탈이나 불법적인 회계 처리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해봅시다. "신고해야 해, 이건 범죄야"라는 목소리와 "내 밥그릇이 날아갈 수도 있어,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잖아"라는 목소리가 충돌합니다. 결국 "나 혼자 어떻게 할 수 있겠어"라며 침묵을 선택하지만, 뉴스에서 유사한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정부 지원 과제를 수행할 때의 상황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연구개발 과제의 목적과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제조 현장에서 활용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제비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서류상으로는 "달성했다"고 보고합니다. "다른 업체들도 다 이렇게 해, 어차피 형식적인 거야"라는 목소리와 "이건 국민 세금인데 거짓 보고하는 게 맞나?"라는 목소리가 갈등합니다.

더욱 아이러니한 상황은 나중에 벌어집니다. 후배가 훌륭한 아이디어로 새로운 과제를 제안했을 때, 그 아이디어가 이미 서류상으로는 "수행 중인 과제"이고 "활용 중인 기술"이라는 이유로 채택되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실제로는 현장에서 전혀 활용되지 않고 있는데 말이죠. 이때 과거의 거짓 보고가 새로운 혁신을 막는 장벽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내적 갈등은 결국 그 사람의 정체성을 결정짓습니다. 어떤 양심의 목소리에 더 자주 귀 기울이는가, 어떤 선택을 반복하는가에 따라 우리는 점차 특정한 방향의 사람으로 변해갑니다. 양심은 단순한 도덕적 감정이 아니라, 우리 존재의 핵심을 형성하는 요소인 것입니다.

3. 사회적 기준에 흔들리는 양심의 딜레마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사회적 가치에 따라 계속 변한다면, 과연 그것을 진정한 양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여성이 재혼하는 것을 부도덕한 일로 여겼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것을 '양심'이라고 믿었죠. 하지만 지금은 개인의 행복 추구권으로 인정받습니다.

또한 1960년대 미국에서는 흑인과 백인이 같은 식당에서 식사하는 것조차 많은 지역에서 '비양심적'이라고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그 사람이 비양심적이라고 평가받을 것입니다.

더 가까운 예로는 직장 내 회식 문화를 들 수 있습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회식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팀워크를 해치는 이기적인 행동"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개인 시간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 더 문제"라는 시각이 우세해졌죠.

이런 상대성 앞에서 우리는 혼란스러워집니다. 사회가 정한 기준을 따르는 것이 양심인가, 아니면 사회적 기준을 넘어선 절대적인 도덕률이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각자가 찾아야 할 몫인지도 모릅니다.

4. 집단적 면죄부와 진정한 양심

"다들 그렇게 하는데"라는 말로 우리는 종종 양심의 가책을 피하려 합니다. 집단의 힘에 기대어 개인적 책임을 희석시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자기 합리화가 과연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줄까요?

실생활의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일하는 김씨는 입주민들이 불법 주정차를 해도 단속하지 않습니다. "다른 아파트도 다 이래요. 너무 엄격하게 하면 주민들이 싫어해요"라고 말하며 자신을 합리화합니다. 하지만 밤마다 소방차 진입로가 막혀 있는 모습을 보며 마음 한구석이 불편합니다.

후배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해보면 더욱 복잡해집니다. 박과장은 회사에서 부당한 지시를 받았습니다. 상사가 허위 보고서 작성을 지시했을 때, "다들 이런 식으로 일해요. 회사 생활이 원래 이런 거죠"라고 말하며 따라했습니다. 하지만 신입사원들 앞에서 "정직하게 일해야 한다"고 말할 때마다 어딘가 공허함을 느낍니다.

더 직접적인 예로, 이씨는 후배와 함께 카페에서 계산할 때 직원이 깜빡하고 한 메뉴를 빼먹은 것을 알았습니다. "말하지 않으면 그만이고, 몇 천원 차이인데"라고 생각하면서도, MZ세대 후배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에 갈등합니다. 이때의 선택이 후배에게 "작은 거짓말은 괜찮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온라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들 악플 달고 있으니까 나 하나쯤이야"라고 생각하며 익명으로 누군가를 비난한 후, 며칠 뒤 그 사람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뉴스를 보고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아무리 사회적 양심이라는 잣대로 자신을 정당화하려 해도,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는 여전히 옳은 양심과 그릇된 양심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떳떳해 보이려 하지만, 내면에서는 끊임없는 불편함과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양심이란 사회적 기준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도덕적 직관에 귀 기울이는 것이 아닐까요? 비록 그 길이 외롭고 어려울지라도, 자신의 진정한 양심에 따라 사는 것만이 진정한 내적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을 것입니다.


양심은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소중한 선물이면서 동시에 가장 무거운 짐입니다.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진정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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